처음에는 단순한 꿈 이야기였다. 임시로 마련 된 기지에 머물며 선잠을 자던 날이었는데, 릭은 두 시간을 꼼짝않고 졸았다.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았으니 졸았다고 보기도 애매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병든 닭처럼 자다가 일어나서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내가 그대의 손을 뭉개버렸소.
나는 여전히 잠에 취해 헤롱거리는 릭에게 면박을 놓았다. 릭은 내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눈을 바닥에 내리깔고 얘기를 이었다. 어딘가에서 나와 릭 단 둘만이 남았는데 갑자기 내가 돌변해서 자길 해하려 들었다는 말이었다. 릭은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자꾸만 땅과 내 손을 훔쳐보았다. 잘 붙어있으니 걱정 마라. 내가 그리 말하자 그제서야 릭은 어설프게 미소지었다.
그 후로도 릭은 바닥이건 벽이건 판판한 어딘가에 머리를 대는 매 순간마다 꿈을 꿨다. 어느 날은 누군가의 목을 자르고, 또 어느 날은 다리를 자르고, 또 어느 날은 회사의 건물에 불을 질렀다고 벌벌 떨기도 했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 까지 몸을 작게 웅크리고 꿈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읊었다. 회사 측에서 갑자기 나를 죽이려고 했소, 그대의 동생이 갑자기 내게 칼을 휘둘렀어, 연합의 루이스가 명백히 나를 노리고 능력을 썼단 말이오. 모든 명제가 다 말이 안되는 것들뿐이었는데 릭은 마치 그것이 눈 앞에 벌어졌던 현실인양 굴다가 내가 한쪽 손을 내어주면 그것을 생명줄처럼 쥐고 잤다. 그나마 나은 처방법이었지만, 달리 효과가 좋지는 못했다.
릭은 말 없이 허공을 보고 있는 시간이 늘었고, 타인의 스킨쉽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내가 부르는 이름에 쉬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을 들리면 곧 내가 칼을 꽂을 것 같다고 했다. 미안하오, 내가 아직 꿈에서 덜 깼나봐. 릭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를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릭이 나를 등지고 돌아눕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동떨어진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된 건? 사람을 죽일 때 더이상 눈을 감지 않게 된 건? 응당 해야할 일을 한다는 듯이 적군의 사지를 찢는 릭이 내가 원하던 아군이 맞았던가?
릭은 내게 많은 징조를 보였다. 꿈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럼 나는 어땠지? 부탁이니 옆에서 오분만 함께 쉬어달라던 릭을 두고 떠났었다. 시체를 앞에 두고 괴로워 하는 릭에게 어린애 처럼 굴지 말라고 화를 냈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듣고싶다던 목소리를 멋대로 길바닥에 밟아뭉개고 악착같이 임무에 매달렸다. 그러는 동안 릭이 쌓아놓은 방벽들은 착실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다만,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