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옆으로, 목 뒤로 수 많은 살기가 스쳐지나간다. 섬광은 무엇보다 빨라야한다. 눈에 보여선 안되고, 깊게 생각해선 안된다. 짧은 순간에 가장 완벽한 생각을 정리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스물 여섯 해를 그렇게 살아왔다. 누군가 보기엔 숨막히고, 또 누군가 보기엔 정신 없도록.
옆구리를 뚫고가는 검날에 오른 다리가 무너진다. 나는 핏물을 삼키고 바닥에 검을 꽂았다. 섬광은 빛처럼 빠르게 달리지만, 건너 뛰는 존재는 아니었으므로 운이 나쁘면 지금처럼 누군가의 손에 잡힌다. 나를 둘러싼 적들이 껄렁하게 웃는다. 모두가 벨져 홀든의 대미를 장식하겠다고 나선다. 나는 흥, 코웃음을 쳤다. 너희같은 놈들이 나를 잡을 수 있을리가. 내 발목을 쉽게 낚아 채는 것은 한 사람 뿐이다. 그는 아주 느렸지만, 그림자를 두지 않고 뛰어다녔다.
이 전장터의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릭 톰슨이 떠올랐다. 초록색 별을 가두고 있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나는 바닥에 박힌 검을 빼들고 바로섰다. 난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 손톱이나 물어뜯고 있을 걱정많은 남자에게 한 소리를 쏘아붙여야했다. 그리고 멱살을 틀어쥐고 입술이나 갖다 박으리라. 누가 지켜보고있더라도 상관 없다.
책벌레처럼 독서를 즐겼던 나도 이제껏 몰랐던 사실인데, 때로 인간은 시뮬레이션만으로도 목적의식을 되찾기도 한다. 릭이 말하던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게 무엇인지 좀 알것도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알게 되어 유감이다.
"비켜 서라."
내가 입을 열자 나를 조롱하던 이들이 일순 입을 다문다. 병신들. 나는 노골적으로 놈들을 비웃었다. 바라보는 눈이 백 개는 되어 보였다. 적은 적어도 쉰, 짐은….
오늘은 없군.
"싫으면 죽어야지."
검을 쥔 손을 들자 살가죽이 얼얼하다. 구멍난 배에서 뱉어내는 피가 옷을 적신다. 침을 뱉으니 덩어리진 피가 섞여나왔다. 그치만 느려터진 타키온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 따위 없지. 나는 두개의 검 중 하나를 허공에 집어 던졌다.